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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HANDS
조회 :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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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3.08.30
 얼마 전 대기업 임원을 만나니 요즘 책 한권을 다 읽기가 힘들다는 말을 한다. 워낙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도 하지만 보고서 같은 간결한 글들만 읽고 상사에게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해 보고하는 데 길들여 있다 보니 언어에 관한 호흡이 너무 짧아진 게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말을 길게 해도 참을 수 없고 조금만 글이 길어도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들며 정서적인 글을 직장생활 이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임원이 되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길고 수사적(修辭的)인 글을 읽고 쓰기가 힘든 것과 창의성이 상실되어 간다는 것은 연관성이 있다. 언어는 인간을 창의적이게 만드는 무한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정된 음소와 음절로 수없이 많은 단어를 만들어 내고, 그 단어들을 조합하여 끝없이 많은 문장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디선가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문장과 글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인간은 아주 작은 차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이란 매우 미묘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단어 선택 하나에도 생각을 거듭해야 하고 단어를 연결하는 문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며 문장과 문장은 어떻게 구성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동안 논리성과 창의성이 커 간다. 글쓰기가 언어 활동의 가장 정제된 결과물인 셈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언어의 수사 같은 것들은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수사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 수사학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인간 관계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발전해 온 분야 중 하나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논리적 지식에 수사적 상상력을 입혀야만 진정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오늘날과 같은 대량 생산, 소비, 대중 민주주의 사회에 더욱 적용할 수 있다.
읽고 쓰기에 관한 한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사실 우리의 이런 철저하리만큼 끈질겼던 인문적 전통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옆에서 고유한 문화를 지키며 살아 온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에 대한 숭배는 산업화라는 태풍 속에서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켜 백안시되다 보니 안 읽고, 안 쓰는 오늘의 현실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풍조 속에 언제부터인가 공대 출신에게는 아예 글쓰기를 포기해도 된다는 묵계가 있는 듯한데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공대 출신들의 사회활동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읽고 쓰기에 투자해야만 진정으로 창의적이고 경영 능력을 겸비한 엔지니어가 탄생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 명문 컬럼비아 의대에는 뉴욕타임스가 미국의 석사 과정 중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 `내러티브 의학(Narrative Medicine)`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소설가인 넬리 허먼(Nellie Herman)은 이 프로그램에서 의대생들에게 소설 창작 워크숍 교육을 맡고 있는데, 그는 특히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서사(敍事)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150여 년 전부터 글쓰기를 치료법으로도 사용해 오고 있다. 오늘날 문학 치료는 여러 연구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글쓰기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창조성을 이끌어 내며,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어 만족감과 자신감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장 전문가 오르니시(Dean Michael Ornish) 교수는 평소 자신에 대한 글쓰기를 규칙적으로 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심장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도달점이 `쓰기`가 되었으면 한다. 간결하고 논리적인 글, 심지어는 개조식(個條式) 글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지친 비즈니스맨들에게 먼저 자신에 관해서 글을 써 보고, 자신의 개성있는 문체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간이 없다는 저항을 이겨내면 그것은 아마 가장 접근하기 쉬운 치유(healing)이자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프랑스 철학자 뷔퐁이 말한 `문체(style)는 곧 사람이다`를 곰곰이 새기다 보면 `글`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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